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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에나 고유한 스토리가 있고 크고 작은 비밀도 있는 법. 추석에 시댁에서는 꼬마 조카를 겁주었던 짓궂은 삼촌들 이야기, 대학 안 간다는 동생을 주전자의 뜨거운 물로 위협하며 공부시켰다는 형님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보통 40년 전 일이다. 아들이 중3 때 친구들과 가출했다가 하루 만에 돌아온 모험담 혹은 고생담, 그것도 10년도 더 지났지만 계속 나오는 얘기다. 친정에선 사업가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약간 과장되게, 어머니 묘소 이야기는 경외감을 곁들여서 또 등장했다. 각자의 불완전한 기억과 극적 효과를 위한 과장이 가미되면서 진실과 멀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스토리의 원형은 반복된다. 어떤 면에서 가족은 스토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스토리가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고 썼는데, 크게 공감했다. 무난하고 무탈한 삶이 어떨 때는 부럽지만, 지금 고생스럽기 때문에 부러운 거다. 고생도 지나고 나면 진한 스토리가 된다.


당신의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강점 코치 양성 과정인 GGSC에 나오는 질문을 본떠서 이런 질문을 해본다. 당신의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떤 책입니까? 모험 소설? 자기개발서? 따뜻한 에세이? 가슴 아픈 멜로? 명랑 가족 시트콤? 삶은 복합적이지만 자신과 가족의 개성은 숨길 수 없다.


나의 삶은 어땠나? 초반 스토리는 방황기로 기록될 것 같다. 무엇이 옳은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할지, 기준도 없고 스승도 없이 헤매었다. 그다음은 자기개발 스토리가 3분의 1은 차지할 것 같다. 쉼 없이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애 키우고 공부하고, 또 일하며 커리어도 자라나갔다. 너무 몰입해서 힘든 줄 몰랐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삶의 진짜 클라이막스가 될 파트는 코칭이다. 코치로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핵심 스토리다. 다만,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못하는, 끝까지 나만이 간직할 스토리들이다. 사람들에게 들은 속 깊은 이야기들, 마음으로 연결되었던 공감의 대화들, 각자의 박물지 같은 다양한 배경과 그 주인공을 둘러싼 등장인물들,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들, 이 대화를 빼면 내 삶의 스토리도 쓰기 어렵다. 그 스토리의 제목은 말하자면, 여러 인생과 고민의 증언자라고 해 둘까?


앞의 질문은 다음 이 질문으로 이어진다. 당신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지금 어떤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까?


과거 한 출판사의 대표였던 지인은 책 출간의 기준을 간단히 정리해 주었다. 감동이 있거나, 참신한 시각과 새로운 지식이 있는 내용만 출간하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참 명료한 기준이었다. 우리 삶의 스토리도 (물리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세상에 내놓을 책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나의 삶은 작게라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주는 것이었나? 나는 세상의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인생의 학습자라고 할 수 있을까? 지구의 한 귀퉁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 질문에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하려면 내가 사는 현재의 챕터는 어떻게 완성이 되어야 할까, 상상해 본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