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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와인을 마셔 보기로 결심했다. 와인 맛을 잘 모르는데 종류는 엄청나게 많으니 어떤 와인을 마시는 게 좋을지 고민이었다. 친구가 조언을 해 주었다. 한 가지 와인을 정해서 한 상자를 마셔 보라고. 김 대표는 국민 와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널리 인기있는 ‘몬테스 알파’ 한 상자를 마셔 보기로 했다. 한 상자를 모두 마셨을 즈음 모임에서 다른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몬테스 알파와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드라이하니 무게감이니 와인의 맛을 묘사하는 용어를 잘 몰랐는데 몬테스 알파와 비교하면서 마시니 그런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몬테스 알파는 김 대표에게 와인 맛의 기준점(Point of reference)이 되었다.


김 대표의 친구인 이 대표는 ‘오퍼스 원’이라는 와인 한 상자를 마셨다. 이 와인은 전문가들이 칭찬하는 고급 와인이었다. 이 대표도 이 와인을 와인 맛의 기준점으로 삼게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오퍼스 원은 기준점을 넘어 와인 맛의 절대점이 되었다. 즉, 이 대표는 오퍼스 원이 최고의 와인이며,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다른 와인들도 오퍼스 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박 상무는 A사를 떠나 B사로 옮기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A사에 비해 B사는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알찬 회사였다. 박 상무는 A사에서의 성과와 경험을 인정받아 B사에 영입되었다. B사의 CEO는 박 상무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구성원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랬고, 박 상무도 기회 있을 때마다 A사의 일하는 방법을 구성원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박 상무는 화장실에서 부서 직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이번 프로모션 안에 대해 상무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

“아마 ‘A사에서는 말이죠…’ 하거나 ‘제가 A사에 있을 때는 말입니다…’ 하실 거야. 아예 보고 초반에 ‘A사를 벤치마킹해서 프로모션 안을 기획했습니다.’ 하고 말해.”


대화를 나눈 직원들은 웃었지만 박상무는 웃을 수 없었다.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경영자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관점으로 새 직장의 일하는 방법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마치 김 대표나 이 대표가 한 상자를 마셔서 익숙해진 와인의 맛을 기준 삼아 다른 와인의 맛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경영자라면 일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기준점을 갖고 있다. 평소에는 자신의 기준점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직장이나 업종을 옮겨서 일하게 되면 전 직장의 일하는 방법이 자신의 기준점이 되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전 직장에서 성과를 거두었던 일하는 방법의 관점으로 현재 직장의 일하는 방식을 보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반대로 이전 직장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관행이나 일하는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즉, 어느 한 조직에서 성과를 올렸던 일하는 방법이 어느 조직에서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준점이 될 뿐이다. 한 회사에서 성공한 일하는 방법이 다른 회사에서도 성공할 수 없는 것은 두 회사의 배경과 놓인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 상무는 1만 명이 넘는 직원과 세계 20여개국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A사에서의 경험이 5백 명의 직원과 국내 사업장만을 운영하는 B사에서도 그대로 들어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김치를 먹어 온 입맛과 치즈를 먹어 온 입맛은 다르다. 절대 진미는 없듯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경영은 없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는 위험하다.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런 효과가 나는 것은 맞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갑자기 본 적도 없는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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