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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모임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학교수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얼마 후 어머니가 미수(米壽, 88세 생신)를 맞는다. 가족들을 다 불러 잔치를 하고 장남인 내가 가족들 앞에서 어머니 관련한 축사를 하고 싶은데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연세가 88세지만 아직 총명하고 똑똑하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어떤 말이 좋을까?”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명정(明淨)이란 단어가 어떠냐?”라고 답했다. 나도 그랬지만 당사자 역시 그 단어가 딱 좋다고 얘기했다. 처음엔 귀 밝을 총에 밝을 명의 총명(聰明)이란 단어를 생각했다고 한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귀가 밝은 똑똑한 사람에게 쓰는 말인데 왠지 윗사람에게 쓰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근데 명정이란 말은 비슷한 단어지만 뭔가 있어 보이고 윗사람에게 쓰기도 좋은 것 같다. 그런 단어를 찾아줘 너무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어휘력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다.


어휘(語彙)란 무엇일까? 어휘는 ‘말의 무리’란 말이다. 단어의 총합을 뜻한다. 근데 어휘가 중요할까? 당연히 중요하다. 오랜만에 본 사람이 멋지게 달라졌을 때 여러분은 어떤 표현을 하는가? 어휘력이 빈약한 사람은 “야, 대박, 대단한데.” 수준의 말 만을 반복할 것이다. 더 이상의 표현을 하고 싶어도 마땅히 쓸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은 “야, 이 친구 괄목상대할 만큼 달라졌는데.”라고 할 것이다.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본다는 의미다. 예전 일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친구에겐 뭐라고 할 것인가? 나 같으면 “Let by gone, be by gone”이란 영어 격언을 말해줄 것 같다.


이는 비즈니스에서도 유리하다. 내가 아는 경영자는 외국 바이어와의 미팅에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걸 영어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 바이어가 예전에 큰 물량을 사기로 했다가 취소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런 일이 반복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연히 옆에 있던 지인이 “Once bitten twice shy”가 어떤지 물어봤다. 예전에 한번 쓴맛을 본 경험이 있으면 두 번째는 쭈볏거리게 된다는 영어 격언이다. 여기에 딱 맞는 표현이다.


어휘력은 화소(畵素, Pixel)와 같다. 어휘력이 풍부하면 언어의 선명도가 올라가고 어휘력이 부족하면 말이 흐릿하다. 당신의 어휘력은 어느 수준인가? 언어의 선명도가 높은 편인가, 아니면 흐릿한 편인가? 어휘력을 높여 선명도를 높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난 독서만큼 어휘력에 도움이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으면 확실하게 어휘력이 늘어난다. 아는 단어가 500개인 사람과 5만 개인 사람은 표현력에서 차이가 난다. 날 수밖에 없다. 한국말만 하는 사람과 외국어를 몇 개 하는 사람의 삶은 다르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역량은 표현력에 달려있고 그걸 좌우하는 게 바로 어휘력이기 때문이다.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건 다양한 무기를 손에 쥔 것과 같다. 독서를 하면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단어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 단어에 대해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고, 이는 곧 사고의 확대로 이어진다. 사고가 확대되면 예전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공부는 개념이고 개념은 언어에 바탕을 둔다. 즉 언어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어휘력을 넓히기 위한 방법 아닐까? 현재 내 어휘력은 어느 수준일까? 어느 수준까지 올려야 할까?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어휘력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