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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시절 젊음 때문인지 자주 배가 고팠다. 저녁을 일찍 먹고 늦게까지 근무할 때의 시장기는 참기 어려웠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사회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어디에 곱창집이 있는데 지글지글 곱창을 굽고 거기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라면을 끓여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을 탁 풀면, 비 오는 날에는 김치전을 먹으며 만화책을 보면 어쩌고… 정말 그때처럼 음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음식 얘기를 많이 한다고 시장기가 달래지진 않았다. 오히려 배만 더 고팠다.


사람들은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주로 없는 것에 대해 그리워하고 거기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 건강이 대표적이다. 젊은이들은 건강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건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한다.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는 건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노총각은 모이면 여자 얘기를 한다. 그런다고 자기 짝이 나타나진 않는다. 사람들은 아쉬움을 입으로 푼다. 그것이 본성이다.


왕년에 자신이 얼마나 잘 나갔는가를 반복해서 떠드는 사람은 지금은 별 볼일 없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과 같다. 지금 잘나가는 사람, 삶에 자신 있는 사람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도 그렇다. 조직은 이미 갖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대해 주로 얘기한다.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조직일수록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다. 리더십이 없는 조직이 리더십 얘기로 밤을 새운다. 신뢰가 없는 조직일수록 신뢰의 중요성을 입이 아프게 떠들고 윤리가 없는 회사일수록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들 그 부분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하는 부모 자식 간에는 사랑에 대한 말이 필요 없다. 이심전심으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위하는데 어떻게 이를 모를 수 있느냐”라고 따진다면 자신이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이를 느끼는 것이다.


부(富)도 마찬가지다. 재벌 수준에 가까운 이에게 부자의 정의를 물어본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돈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부자입니다. 자기가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쓰는지 얼마가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부자지요. 돈에 초월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돈이 많지만 아직도 돈, 돈 하는 사람은 부자가 아닙니다. 돈이 늘 어젠다(Agenda)인 사람은 부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조직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자기 덕분에 조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직원들에게 많은 애정을 가졌는지 떠드는 리더가 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 리더가 마이크만 잡으면 고개를 돌린다. 어떻게 저렇게 직원들에게 무심하고, 비윤리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고 그것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도망간다. 말은 허무하다. 말에는 한계가 많다. 말로는 모든 것을 다 하지만 행동은 반대로 한다면, 말이나 못 하면 중간은 간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