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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 보름간의 일정 동안 디저트로 나온 여러 치즈를 난생처음 맛있게 먹었다. 오잉? 난생처음이라? 치즈를 먹으며 난생처음이라는 단어를 쓰는 나도 어색한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더욱 이상하게 느낄 것이다.


젊은 날 글로벌 통신사들과 비즈니스가 많아 해외출장을 많이 다닌 편이다. 그때 딱 하나 지킨 철칙이 있다. 치즈와 버터, 햄은 절대 안 먹는 것이다. 호텔 조식에 널리고 널린 것이 치즈와 버터, 햄인데 눈 한번 돌린 적이 없다. 언제나 야채 한 접시, 간단한 수프 그리고 계란 요리가 전부였다.


일본에서 장수촌으로 제일 유명한 곳은 오키나와이다.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이 68명으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적어도 1985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90년대 들어서 젊은이들이 급사도 많이 하고, 비만율과 성인병 비율이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2020년 최근 조사를 인용하면,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평균수명을 보면 오키나와 남성 평균수명은 47개 광역자치단체 중 36위에 머물렀다. 1985년까지 전국 1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숫자다. 90년 초 당시 일본에서는 원인을 찾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몰려가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치즈와 버터, 스팸 때문이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오키나와에 대규모 미군 기지가 들어섬에 따라 오키나와 젊은이들의 식습관이 바뀐 것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쇼유 라면이나 돈코츠 라면에도 어김없이 치즈와 버터가 들어가는 등 이 모든 것은 오키나와 신토불이 음식을 버리고 서구식 음식을 선호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치즈랑 버터는 절대 먹지 않겠다는 나름의 확고한 신념이 생긴 것이다.


5~6년 전에 은퇴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즐겁게 세컨드 스테이지를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것인가? 등등 남들이 하는 고민을 나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미국의 어떤 나이 드신 현인이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겠노라’ 하시면서 한 여러 말씀 중에 “이제부터 나는 초콜릿을 먹겠다.”라는 작은 말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그렇구나. 이 현인께서도 신체의 건강을 위해 마음의 건강을 제한하고 있었구나.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먹는 것에도 제한을 두면 안 되는구나.’라는 큰 깨달음이 왔다.


이번 남미 여행은 코로나 이후 모처럼 만의 긴 해외여행이었고 마침 치즈나 버터를 먹을 기회가 많았다. 특히 식전 빵을 먹을 때는 어김없이 버터가 나왔고, 생각을 바꾼 이상 즐겁게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생각보다 치즈나 버터가 맛있었다. 내 삶의 기피제가 호감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은퇴를 하고 난 뒤, 어쩌면 이제부터 나의 자유로운 여행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남미 여행은 버킷리스트에 있는 여행이었다. 아직도 내 버킷리스트에는 많은 여행이 남아있다. 여행과 치즈는 내 영혼을 보다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더 많은 여행이 기대된다. 아울러 여행 속에서 만날 새로운 치즈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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