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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홀 티 박스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새벽안개가 짙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보고 쳐요?” 권 전무가 캐디를 쳐다보며 묻는다. 대학 후배인 권 전무는 철강회사 중역이다. 캐디가 빨간색 플라스틱 화살표를 티 박스에 올려놓고 방향을 알려준다.


“이쪽 보고 치세요.” ‘퍽’ 소리를 내며 공이 안개 속으로 날아간다. 날아가는 공이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데 ‘굿 샷’을 외친다. 캐디는 그 짙은 안개 속에서도 공을 기가 막히게 찾아준다.


드디어 파(Par) 5 홀의 그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린 위에 올라가 보니 홀 컵 위치와 그린 경사가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잘 맞았다고 생각했던 내 볼은 홀 컵과 거리는 가깝지만 옆 내리막이 심한 위치에 놓여있다. 나는 두 번의 퍼팅으로 겨우 볼을 홀 컵에 넣을 수 있었다. 안개는 그 뒤로 네 홀이 지나서야 걷혔다. 그러나 권 전무는 여전히 캐디에게 매번 어디로 쳐야 하는지 묻는다.


골프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권 전무가 묻는다. “형님,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정말 고민입니다.”


길어야 2년 뒤쯤 은퇴를 예상하고 작년부터 만나면 은퇴 후에 뭘 하는 게 좋은지 묻곤 했다. 골프, 등산,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거나 기타나 색소폰을 배우는 선배들 모습도 좋기는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점차 흥미를 잃을 것 같고…그렇게 지내는 것이 진짜 자기가 원하는 삶인지 모르겠단다. 귀농도 고민했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한 부부가 잘 감당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섞어 말한다. 은근히 코치의 길을 준비하는 내가 부러운 눈치다.


은퇴 후 삶을 설계하는 문제는 자주 접하게 되는 코칭 주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라는 충고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대학 입시 준비를 하다 보면 대개 대학 전공은 자신이 원하는 전공보다 수능 성적과 부모의 권유로 선택한다. 많은 직장인들의 삶은 그렇게 선택한 전공의 영향권에서 시작한다. 조직에서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성실히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정해진 목적지를 실수 없이 빨리 도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은 은퇴시점까지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모른 채 도착한다. 그들은 메뉴를 고르듯 은퇴 후 삶을 고르고, 그것을 위한 추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권 전무, 오늘 첫 홀 티 샷은 어디를 보고 쳤어?” 권 전무는 몰라서 묻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권 전무의 질문이 마치 티 박스에서 홀을 겨냥하기 위해 홀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 것 같아.”


스윙 방향을 알면서도 자주 묻던 모습을 이야기해 주면서, 내가 만난 여러 조직의 임원들도 실수를 두려워하며 확실한 목표를 찾기 위해 고민만 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잠시 서행하던 차가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인생은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고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파 5 티 샷을 그린을 보고 겨냥하는 사람은 없어. 그린 위에 올라갔을 때 내가 원하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권 전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 껌벅거린다. “아…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보이지 않아도 일단 티 샷부터 하면서 천천히 만들어 나가란 말씀이네요.” 마치 통찰을 얻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더니,


“근데 티 샷은 어디 보고 쳐요?” 이런…!

* 칼럼에 대한 회신은 jongkim1230@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