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한 아이들 인터뷰는 천편일률적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 배운 걸 복습하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등등... 특별한 게 하나도 없다. 근데 그건 거짓이 아닌 사실이다. 그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 행복도 그렇지 않을까? 행복을 위해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할까? 행복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이 방법을 몰라서 행복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게 행복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키워드는 ‘일상’이다. 행복을 위한 그 무엇, 썸띵(Something)은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끝내주는 일이 있어 행복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그 자체가 행복이다. 끝내주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다. 일상이 아닌 곳에서 행복을 찾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 즉,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시인들은 그런 일상의 행복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시인 나태주의 <행복>이란 시다. 철저하게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얘기한다. 하나도 특별할 게 없다. 누구나 집이 있고 생각할 사람이 있고 부를 노래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중략)”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란 시다. 집에서 늘 아내와 늘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얘기다. “밥 먹었어? 오늘은 뭐 먹을까? 여보, 오늘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나가요.” 늘 주고받는 말들이다. 한 번도 그 말을 주고받으면서 행복하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나 혼자 남았을 때 난 이런 사소한 언어의 소중함을 느꼈다. 비가 와서 비가 온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국이 싱거운데 그 말을 나눌 사람이 없다. “오늘 뭐해”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옆에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행복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이다. 어떤 스님이 진리를 가르쳐 달라면서 조주선사를 찾아왔다. 그는 뭔가 끝내주는 한 마디를 기대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조주선사는 “밥은 먹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예, 밥은 먹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럼, 그릇을 씻어라”라고 말했다. 그게 전부다. ‘원 참 세상에’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진리는 뭔가 끝내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밥을 먹는 것, 밥을 먹은 후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신이 씻는 것 그게 깨달음이다. 구체적 일상이 중요하다 로빈 A. 쉬어러의 <더 이상 우울한 월요일은 없다>에 보면 일상에 영혼을 불어넣는 16가지 방법이 있다. 아주 단순하다. 인생을 단순화하자. 이 정도면 만족하겠다는 한계를 정하자. 행복하지 못 한가? 불행한가? 혹시 불행한 이유를 다른 이에게 돌리는 건 아닌가? 행복하고 싶으면 일상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행복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