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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고칠 수 없는 병이 하나 있다. 바로 ‘질주본능’이다. 차를 몰 때 그 버릇은 확연히 발휘(?) 되고 만다. 도로에서 남들보다 늦게 가면 참을 수가 없고, 목적지에 누구보다도 빨리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차량이 별로 없는 아침 동틀 무렵의 고속도로는 어쩔 수 없이 시속 200km로 달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질주본능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병인 것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어떤 일을 하든 누구보다 빨리 끝내야 하고, 주변의 그 누군가가 나보다 빨리 일을 마치면 참을 수가 없다. ‘빨리빨리’의 대표 주자임에 틀림없다. 30년 이상 대기업에서 쉴 틈 없이 바쁘게 바쁘게만 살다가 고위 임원까지 마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라고 스스로 자위해보지만, 이 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고민이 참 많다. 집사람의 끝없는 당부가 ‘천천히’이고, 밥상 머리에서도 “제발 좀 천천히 드세요”가 노랫소리가 된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지금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는 ‘일일 실천 계획’의 항목 중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시속 150km를 넘지 말자’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오른발 뒤꿈치에 조그만 트러블이 생겨서 병원을 찾았다. 족저 근막염의 일종으로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 트러블은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유독 운전 중 액셀을 밟을 때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지장을 주곤 했다. 특히 장거리 운전 시에는 그 아픔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심각한 운전장애로 나타났다. 1시간 이상을 달릴 때에는 아픔을 가라앉히기 위해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아예 출발 전에 구두를 벗고, 뒤꿈치에 무리를 주지 않는 샌들 종류로 갈아 신고 운전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우연히 차량의 ‘크루즈’ 기능(반자율주행 기능)에 눈이 갔다. 내가 운전하는 차량에는 처음부터 있던 기본 기능이었지만 질주본능으로 인해 그간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내 차량에는 있으나 마나 한 기능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남들이 너무나 쉽게 사용하는 크루즈 기능을 드디어 쓰게 되었고(차량을 산지 딱 5년 만의 일이다), 장거리 운전 시 너무나 유용하게 사용하게 되면서 크루즈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고 말았다.


크루즈 기능은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운전의 여유를 주었고 창밖의 풍경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편리한 기능을 질주라는 본능에 속아 사용을 못 했다니, 인생을 헛살았다.”, “너 인생도 그런 거야. 이제 크루즈를 장착해!”라는 통렬한 반성을 통해 인생 전체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시속 120km를 잘 넘지 않는다. 예전에는 운전이 승부였고, 목적지에 대한 쟁취였기 때문에 운전은 항상 전투태세였는데 지금은 운전이 너무 편하고 안락하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가 질주본능이란 프레임에 갇혀 천천히 즐기는 여유를 못 누린 나 자신이 바보스럽기까지 했다.


더불어 ‘크루즈’라는 기능이 내 질주본능만 누그러뜨려 준 것만이 아니라 그 체험을 계기로 지금 내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외출할 때 항상 여유 있는 집사람과 달리 언제나 빨리빨리 외치던 내가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줄도 알고, 외식 시 누구보다도 급하게 식사하던 버릇도 점차 좋아졌다. 특히 쇼핑하러 갔을 때 첫 번째 가게에서 물건을 쓱싹 구입하던 고질병(?)도 급격하게 좋아졌다. 집사람의 충고도 들으며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물건을 비교해 가장 좋은 물건을 여유 있게 구입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인간이 많이 됐다. 하하.


크루즈 기능과 친해진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가는 삶 자체가 많은 여유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더구나 이제는 가끔씩 멈추어서 명상도 하고, 삶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고마운 크루즈 기능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kdaeh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