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도 전부터 부담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기꺼이 ‘오케이!’하는 일이 있다. 얼마 전 강점코치가 된 의사분과 얘기하면서 둘이 이게 너무 비슷해서 깔깔거렸다. 여자들은 쇼핑을 좋아한다는 통념과 달리 우리 둘은 여성이지만 옷 사러 돌아다니는 게 힘들다. 누가 알아서 사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일 정도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뭔가 배우고 읽는 것이다. 그녀는 나를 알기 전에 내 책을 먼저 읽었고, 강점 코칭을 배우면서 함께 동지가 되었다.
기꺼이 '오케이!' 하는 일
요즘 내가 특히 즐겁게 하는 일이 있다. 지인, 동료나 제자들이 쓴 책에 추천사를 쓰는 일이다. 짧으면 단 몇 줄, 길면 2~3페이지 분량이다. 왜 이 일은 나에게 하나도 힘이 안 들고 즐거울까? 누구에게나 유난히 즐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
Edward L. Deci와 Richard M. Ryan의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의하면 사람들이 동기를 갖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 자율성(Autonomy)이다.
사람들은 유능하다는 느낌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잘한다는 주위의 평가, 할수록 나아지는 느낌을 주는 일은 더 하고 싶다. 반대로 너무 쉽거나 하찮거나, 반대로 너무 어려워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 잘 못 해서 열패감을 주는 일에는 동기를 갖기 어렵다. 추천사를 쓰는 즐거움은 출간 전 원고를 읽으며 그 진가를 찾아내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나를 유능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컨셉이나 표현을 떠올릴 때, 그 표현이 괜찮다고 스스로 만족할 때, 저자나 출판사로부터 책의 핵심을 잘 표현해주었다는 감사 인사를 들을 때 매우 기쁘다.
둘째는 관계성이다. 의미 있는 사람과 관련된 일에 사람들은 동기를 갖는다. 상사가 관심을 갖는 일, 가족이 하기를 바라는 일, 친구를 위한 일에 사람들은 열성을 낸다. 내가 잘 알고 믿는 사람들이 잘 써주기를 기대하는 추천사는 나에게 소중한 것이다. 관계성이 꼭 아는 사람일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재미있는 예시가 스타에 대한 팬들의 심리다. 스타로 뜨고 나서 팬이 된 사람보다, 무명일 때부터 좋아한 팬들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심리적 지분을 갖는다. 자신이 발굴한 것 같이 느껴진다. 특별히 해준 건 없어도 스타가 잘 나가면 자기 일인 양 으쓱하고, 부정적인 스캔들이 나면 더 괴롭다. 나에게 그는 특별한 의미 있는 존재이고, 참여 지분이 있는 것 같은 심리 때문이다.
셋째 자율성이다. 어렸을 적에 막 공부하려고 앉았는데,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같은 일도 남이 지시하면 동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지시가 아닌 코칭이 필요한 것이다. 추천사는 판단이나 평가받을 걱정이 없이 순수 자율 작업이다. 분량과 마감 시한을 지키는 것 외에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 그래서 즐거운 작업이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옷 사기를 싫어하는 건 쇼핑 실패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 몰입도(Engagement) 조사에 대한 미국 갤럽 사의 Q12 항목을 보면 ‘직장에서 내가 잘하는 일을 할 기회가 있다’는 항목이 있다. 유능감을 체험하는 것이 몰입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강점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몰입을 선사하고, 발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내적 동기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모든 상사와 부모들이 곰곰이 새겨 볼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