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동의 시대 한복판에서 새해를 맞았다.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 감염자 수가 높아지면 탄식을 했고 조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갈까 조마조마했다. 이렇게 널뛰었던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 하자니, 변치 않는 무언가가 그립다. 하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있기는 할까?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대체로 사기이거나 상술이다.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라는 마케팅은 사랑의 취약함을 알기에 잘 먹히는 것이고, 영생의 약속은 현세가 고달픈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에 강력한 것이 아닐까. 변치 않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오래가는 끈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좋아하고 지속하는 일, 오래 품은 소망,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와 우정에 대해서.
피터 드러커는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특별한 재능, 특별한 적성, 특별한 훈련은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몇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능력” 이라고 했다. 이 문장이 왜 크게 와 닿을까? 원하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 데서 오는 낙담을 이겨내고 꾸준히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재능인가, 끈기인가 그릿(GRIT)의 저자 안젤라 다크워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뛰어난 운동선수를 우리는 타고난 재능 탓으로 치부하지만, 실은 최상급 기량도 수십 개의 작은 기술과 동작을 배우고 깨치며 주의 깊은 연습을 통해 습관화하고, 이것이 전체 동작으로 나온 결과물이다. 비범하거나 초인적인 동작은 없다. 탁월함의 일상성이다.” 전문성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떤 일의 겉모습만 보고 매력에 빠지는 사람을 보면 살짝 불안하다. 일이란 첫사랑처럼 한눈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깊이 관여해보면서 미묘한 기쁨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념해 보기 전에는 뻔하거나 시시해 보이는 일이 많다. 끈기 있게 시도하면서 퀄리티 차이를 알게 될 때, 발전을 경험할 때,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확신을 가질 때 서서히 차오르는 자신감과 함께 전문성이 진화해 나간다. 이전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대상에 흥미를 느끼는 게 전문가이고, 그 차이를 아는 게 안목이다. 뭔가에 강한 흥미를 보이며 뛰어들었다가 얼마 뒤에 완전히 다른 일로 옮겨가기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지인으로부터 머리가 좋은 친구 얘기를 들었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는데, 다른 관심사를 쫓아다니느라 공부를 안 해서 학사경고를 받더니, 4학년 때 진로 걱정을 하더라는 거다. 그때 회계사가 유망하다고 조언을 했는데, 그 말 듣고 바로 그날부터 준비를 하더니 1년만에 시험에 합격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회계법인에 들어가서 1년쯤 되었을 때 이 일은 적성이 아닌 것 같다고 쉽게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당시 붐이던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몇 년 지나자 사업이 잘 안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 때문에 주주들로부터 압력을 받는 게 힘들다고 지분을 정리하고 나왔다. 다음에는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는데, 조직 문화가 위계적이라 참기 어렵다며 퇴사를 했다. 그리고선 중견기업에 임원으로 갔다. 얼마 후 오너 경영자와 마음이 맞지 않아서 자의 반 타의 반 나오게 됐다. 지인은 그 친구가 그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 분명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텐데, 진로를 너무 자주 바꿔 이룬 게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에게 코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오래도록 품을 희망과 끈기 끈기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시간이다.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불안감, 소셜 미디어에 넘쳐나는 성취와 자랑들, 유튜브로 대박 났다는 소문들. 이런 것들은 모두가 빠르게 뛰어가는데 혼자 뒤처진 것 같은 느낌과 조급증을 부추긴다. 하지만 새해를 맞으며 나는 생각한다. 끈기 있게 의식적인 연습(deliberative practice)에 집중해보자고. 안데르스 에릭슨은 책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어떤 일을 무조건 1만 시간 동안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식의 해석은 완전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오직 의식적인 연습, 즉 온전한 집중과 노력을 기울이고, 수행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끈기 있는 연습을 통해서만 눈부신 기량이 나온다. 명 문장가인 벤자민 프랭클린도 자기 글을 개선하기 위해서 남이 쓴 좋은 글을 메모해가며 읽었고 읽은 다음에는 원문을 서랍에 넣어놓고 자신이 다시 써보곤 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스토리다. 새해를 맞으며 겸손하게 마음을 정돈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품을 희망과 끈기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