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말이 없는 사람이다. 큰딸, 둘째 딸이 매주 집에 오기 때문이다. 다 같이 와서 밥 먹고 주원이 재롱 보고, 목욕도 시키고, 노는 게 우리 집 일상이다. 근데 둘째 다민이가 태어난 후 우리 집 주말은 사라지는 걸 넘어 비상사태의 주말이 됐다. 갓난아기가 있으니 조심할 게 많다. 방안도 깨끗이 치워야 하고 습도도 조절하고 온도에도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애가 둘이다. 애가 하나인 것과 둘인 건 완전 다르다. 집에 애 둘이 오면 정신이 없다. 애 둘이 울기 시작하면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외출은 생각도 못 한다. 다민이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는 계속 그럴 것 같다. 우선, 애들 부모가 너무 딱하다. 육아에 시달린 딸과 사위는 몰골이 말이 아니다. 샤워도 못 하고 집에 왔다고 해서 일단 샤워부터 하라고 했다. 주원이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동생이 생기는 바람에 권력 빼앗겼지, 날씨는 추운데 코로나까지 덮쳐 외출 못 하지, 완전 밀림의 왕자 타잔을 우리 속에 가둬놓은 격이다. 그래서인지 떼가 늘었다. 말이 늘면서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도 할아버지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단다. 거기 가면 자기가 맘대로 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리라. 손자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난 주말에만 애를 보는 데도 이리 힘든데 매일 하루 종일 애와 붙어있는 엄마들은 어떨까? 요즘 우리 딸들은 부모를 절실히 원한다. 결혼 전에도 부모를 끔찍이 원하긴 했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애를 낳고 기르면서 필요성이 더 커진 것 같다. 둘이 애 둘을 키우는 게 힘에 부치니 우리 부부의 도움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얘들이 앞으로 얼마나 우리를 이 정도로 절실히 원할까? 길어야 몇 년일 것이다. 어느 아주머니 말로는 애들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필요성은 확 준단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애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도, 주원이가 나와 놀아주는 것도, 우리가 이렇게 놀아줄 수 있는 것도 다 때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필요로 할 때 적극 도와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은퇴한 지인들은 들로 산으로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데 당분간 우리 집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사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다. 힘든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고 우리끼리 놀러 가도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 하여간 요즘 우리 부부는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딸들은 수시로 나와 아내의 일정을 확인한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이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날 수 세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남은 날의 숫자를 세라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끝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젊은 엄마들과의 독서 모임도 그렇다. 10여 명의 젊은이들과 매주 혹은 격주에 한 번 모여 내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다. 독서 토론이 끝나면 우르르 밥을 먹으면서 대화의 꽃을 피운다. 웃고 떠들고 그야말로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5년, 10년, 아니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간을 낸 후 다독다독이나 월급쟁이부자 같은 팟캐스트를 같이 녹음하는 날에도 그랬다. 두 시간 정도 내 책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 정신없이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책을 쓸 수 있을까? 이렇게 젊은 사람들하고 얼마나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수많은 곳에서 내 강의를 듣겠다고 전화를 할 때 어떨 때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차 싶다. 내가 그러면 안 되지, 나를 찾을 때 감사하고 잘해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추스른다. 이런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미술관도 보고 쇼핑도 하느라 즐겁지만 이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지금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딸과 사위, 손자들이 조금만 지나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연한 게 앞으론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가진 걸 앞으로는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곁에 있는 게 앞으로는 나를 떠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진 건 사실 내게 아니다. 잠시 내 곁에 있을 뿐이고 언젠가는 나를 떠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면 세상은 감사한 일뿐이다. 잠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내겐 이게 행복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 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