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하고 콘클라베(conclave)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콘클라베는 전 세계 추기경 230여명이 바티칸에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이다. 입후보도 없고 추천도 없이 전체의 삼분의 이의 지지를 얻는 추기경이 나올 때까지 투표를 반복하여 교황을 선출한다.
영화에서 보수주의자인 독일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자신이 교황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식사 자리에서 교회의 방향에 대한 자신의 뜻을 활발히 개진하기까지 한다. 개혁주의자 중에는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같은 개혁파인 이탈리아의 카를로 마르티니 추기경은 유럽이 아닌 국가에서 교황이 나와야 교회가 변화한다고 주장하면서 베르골리오에 대해 지지의 뜻을 밝힌다. 하지만 베르골리오 본인은 교황이 되고 싶지 않으니 자신에게 투표하지 말고 마르티니에게 투표하라고 한다. 이때 가나의 턱슨 추기경이 다음과 같이 플라톤의 말을 인용한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The most important qualification for any leader is not wanting to be leader.)
다른 추기경이 덧붙인다. “그래서 라칭거가 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정말 원하잖아요.” (That’s why it must not be Ratzinger. He really wants it.) 세 번의 투표를 거쳐 라칭거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가 교황 베네딕토 16세이다.
주위 사람들은 리더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베르골리오처럼 막상 자신은 리더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리더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평가하는 만큼 자신은 뛰어나지 않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리더를 뽑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방법은 임명권자가 지명하는 방법이다. 임명권자는 리더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서 검증을 거쳐 임명한다. 리더가 될 준비가 되었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사람도 리더 후보가 된다. 회사의 임원이나 대표를 정하는 과정이 그렇다. 아무리 대표를 하고 싶다고 해도 시켜 주지 않으면 할 수 없고 내심 원하지 않지만 하게 되는 것이 대표이사라는 자리이다.
리더를 뽑는 두 번째 방법은 선거이다. 선거로 리더를 뽑기 위해서는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즉, 권력 의지를 가진 사람이 나서야 한다.
권력 의지는 누구나 갖고 있다.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하지만 기업 조직 내에서 권력 의지가 공공연히 드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불필요하게 권력 의지가 표현되는 것은 조직을 정치적으로 만든다.
리더를 뽑을 때는 권력 의지도 중요하지만 리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를 위해 겸손함이 권력 의지를 가리고 있는 준비된 사람도 찾아내어 리더로 뽑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콘클라베가 바로 이런 방법이 아닐까.
기업의 리더를 구성원들이 모여 콘클라베 방식으로 뽑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업부 전 직원이 모여 차장 이상의 간부 중에서 사업부장을 뽑는다면? 최고참이고 야심만만한 김 부장은 누구나 사업부장 후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직 차장이지만 업무 성과가 높고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이 차장도 사업부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승진을 꿈꾸는 선배라면 성과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동료와의 소통과 관계에 신경 쓰고 진정으로 후배를 대하고 그들의 성장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동료애가 넘치고 팀워크가 충만한 회사가 되지 않을까? 이런 조직에서는 역량과 실적은 물론이고 진정성과 관계가 리더의 미덕이 될 것이다.
승진 심사를 콘클라베로 한다면 내가 승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아니, 콘클라베로 승진을 결정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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