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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감을 믿는 편이다. 아주 많이. 사람에 대한 것이 그렇다. 일단 목소리에 비중을 많이 둔다. 목소리에는 뜻밖에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신뢰가 가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잡상인 느낌이 나는 목소리도 있다. 전화상으로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만나는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직감은 발휘된다. 어떤 이는 너무 어둡고 어떤 사람은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 뭔 지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름의 독특한 느낌이 있다. 얘기를 나눠보면 그 느낌은 더 확실해진다.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 첫 느낌이 맞는 것 같다.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처음엔 아니었는데 나중에 보니 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첫 느낌이 맞다. 책도 그렇다. 책에도 첫 인상이 있는 것 같다. 맘에 드는 책은 아무 부분이나 읽어봐도 맘에 든다. 어느 부분부터 시작해도 몰입해 읽게 된다. 아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별로이다.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독서 관련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내 답은 “NO, you don’t have to”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럴 이유가 없다. 우린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그 책은 고객확보에 실패한 책이다.

난 매달 북멘토로 수년째 활동하고 있다. 역할은 이달의 괜찮은 신간 선정이다. 교보에서 일차로 선정한 신간 10권을 매달 내게 보내온다. 난 그중 괜찮은 걸 5권 추리고 이유를 쓴다. 솔직히 다 읽을 수는 없다. 읽기도 어렵고 읽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뻔한 책, 잘 읽히지 않는 책은 조금 읽다가 바로 덮는다. 진부한 주제의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선정 제외다. 내 선정의 기준은 첫째, 참신함이다.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관한 내용을 선호한다. 둘째, 호소력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너무 무리한 내용, 억지스러운 건 뽑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조용조용 얘기하지만 내 맘에 와 닿는 책을 뽑는다. 셋째, 가독성이다. 잘 읽혀야 한다. 외국 책의 경우 이게 많이 떨어진다. 쓸데없이 사례가 너무 많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책이 많다. 별 얘기도 아닌데 왜 그런 얘기를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거기에 번역자의 이상한 번역이 더해지면 대략 난감이다. 영어를 글자 그래도 옮긴 그래서 정말 어색한 말들로 가득 차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그러다 결정적인 오류를 발견하면 난 책을 덮는다. 한번은 NBA 팀 중 하나인 보스턴셀틱스 얘기를 하는데 보스턴캘틱스란다. 난 더 이상 그 번역자의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어야 하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게 하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책을 읽지 않는 독자보다 읽을 만한 책을 쓰지 못한 저자의 책임도 크다. 책을 읽게 하려면 책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참신한 콘텐츠, 한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게 하는 매력, 저자만의 멋진 상상력 등등… 대부분의 책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난 책을 다 읽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 머리말과 한 두 챕터 정도 읽고 치운다. 더 이상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뽑아서 읽는 경우도 있다. 책을 쓸 때 필요한 부분이 있어 책을 사는 경우 그렇다. 난 머리말을 가장 열심히 읽는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을 왜 썼는지, 어떤 내용인지를 대강 밝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의 저자 김범준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에 그가 한 말을 인용한다. “머리말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부분이다. 책을 쓴 계기나 배경, 전체 내용의 요약, 책의 의의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한 최선의 부분이다. 머리말을 읽으면 독후 효과뿐 아니라 주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책 내용을 요약해주는 부분이 있다면 더 좋다. 머리말을 보면 문체도 알 수 있다. 말에는 말투가 있듯 글에도 문체가 있다. 말투에 따라 인상이 바뀌는 것처럼 문체에 따라 책도 달라진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말하는 문체가 있고, 길더라도 비유와 사례를 적절히 섞어가며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체가 있다.”

난 일년에 거의 500권의 책을 접해야 한다. 나이 들어 눈도 침침해지는데 이 책을 다 읽는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다 읽을 필요도 없다. 또 책 소개가 직업이 된 이후 아는 게 늘어나고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웬만한 책은 보는 순간 무슨 소리를 하려는 지 판단이 선다. 다 읽을 필요성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내가 세운 커트라인을 통과하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 결론은 명확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뭐 때문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가? 아니라 생각하면 죄책감 없이 책을 덮고 버리든지 남에게 줘라, 책을 다 읽지 않는 건 내 책임이 아니라 저자의 책임이다… 이게 내 생각이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내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그의 말이다. “정보부족이 아니라 정보과잉의 세상이다.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다 읽을 수도 없고, 다 읽을 필요도 없다. 첫 10쪽을 읽고 더 읽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라.”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