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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 천지다. 정시에 도착하는 지하철, 아무 탈 없이 자라주는 아이들,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식사, 나를 찾아주는 고객들, 건강한 육체와 정신, 밤에도 다닐 수 있는 안전한 거리 등등… 하지만 대부분 우리들은 감사함을 모르고 산다.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은 감사 관련 격언으로 차고 넘친다. “애꾸는 장님을 볼 때 비로소 신에게 감사한다.” 쇼펜하우어의 얘기이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 그 차이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를 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고 수도원이라도 감사를 할 줄 모르면 감옥이 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얘기이다.

그래서 요즘 감사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다. 참 바람직하다. 하지만 감사 또한 넘치면 안 된다. 말로 감사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의심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야말로 말뿐이고 뭔가 목적이 있어 보인다. 남의 눈을 의식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목적, 이렇게 많은 걸 가졌는데 가만있으면 안 되니까 감사하다는 말로 때우려는 목적, 사실은 별로 감사하지 않은데 욕먹기 싫으니까 억지로 하는 감사…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실이 아닌 겉치레로 느껴진다. 그러다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쓴 “생각 버리기”란 책의 다음 문장을 읽고 공감해 간단히 옮겨본다.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겉치레로, 혹은 남들의 눈을 의식해 감사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일종의 거짓말이다.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비희사(慈悲喜捨)를 강조한다. 자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비悲는 가엽게 여겨서 괴로움과 고통을 없애주려는 마음이다. 희喜는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이다. 사捨는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마음이다. 여기에 감사의 마음은 없다. 감사란 원한다거나 노력한다고 생기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생겼을 때 느끼는 기쁜 감정이다. 감사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는데도 생긴 것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습관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쓰는 대신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습니다, 훌륭합니다. 괜찮더군요” 같이 정형화되지 않은 말을 사용해보는 것이 좋다.

결론은 심플하다. 감사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는데 습관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짓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속으로 뜨끔했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감사도 지나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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