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입시를 다시 쳐서 치과의사가 된 동창이 있다. 결혼하고 아이 셋을 기르면서 입시에 대학 수업과 수련까지 마치고 마침내 의사가 된 그녀. 완전 독한 건가, 머리가 지나치게 좋은 건가. 동창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너무 느슨하게 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까 두려워, 머리가 좋다는 쪽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치과를 다닌다. 그녀는 우리를 진료대에 눕혀놓고 ‘아, 해보세요’, ‘따끔합니다’ 같은 말로 달래가면서 염증이 생기고 흔들리기 시작한 늙은 치아들을 돌봐준다. 올봄에 그녀의 딸이 연락을 해왔다. 미국에서 직장에 다니는데, 코칭을 받고 싶어서였다. 글로벌 IT기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COVID19 같은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실천을 하는 똑똑한 청년이다. 미래 세계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나누면서 관심 분야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함께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시간 정도 전화 코칭를 하고 나니, 내가 이 시간을 엄청 좋아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녀의 참신한 관점에 매료되었고, 오히려 내가 배운 게 많았다. 임원 코칭, CEO코칭을 하다 보니 고객 중에 자녀들을 내게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서 뭔가 배웠으면 해서 소개하는 거지만, 실은 딱히 내가 가르칠 것은 별로 없다. 얘기를 들어주고, 생각을 나누는 게 전부다. 간혹 뜻밖에 연애 상담을 하게 되거나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라며 머리를 쥐어 뜯는 아이에게 그건 당연한 거라고 말해줌으로써 자학을 덜게 하는 효과는 있었을 지 모르겠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함께 정리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해 보기도 한다. 내가 가장 삼가는 일은 조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충고를 늘어놓는 것,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다. 코치라서,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게 자연스럽다. 20년 코칭의 결과 코치로서의 프레젠스가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되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다. 대학 절친인데, 서로 환경이 달라지면서 연락이 오래 끊어졌던 친구가 큰 딸을 나에게 보냈다.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보러 갔었다. 강보에 싸인 애기에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건강한 멋쟁이가 된 딸이 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이상한 감동이 마음을 휘감았다. 엄마 사업을 돕다 보니 정작 자기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헷갈린다는 고민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딸의 착한 심성, 상처를 내보이지 않는 성숙함이 느껴졌다. 대화하면서 딸도 울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중에 내 친구가 전화를 했다. 딸이 나를 만나고 와서 로스쿨 준비를 시작했다며, 뭐라고 했냐고 묻는데,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 아이의 모습에서 예전 너의 착한 심성과 열정을 똑같이 보았고 그래서 가슴이 먹먹해지더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친구의 딸은 내가 있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제자가 되었다. 친구보다 딸과 내가 더 많이 교류하고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동료 코치의 딸이 제자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나중에 그들이 전문코치가 되면 나의 동료가 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약간 설렌다. 나는 마치 증인이 된 것처럼, 친구의 딸과 아들들이 고민하고 결심하고 좌절하고 시도하는 걸 지켜본다. 필요할 때 나는 증언을 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분투하고, 선의를 가졌고, 노력했는지를 말이다. 코칭했던 분이 딸도 코칭 받았으면 한다고 해서 동료인 젊은 코치를 소개했다. 딸이 강점코칭을 받고 나서 자신감을 가지고 진로를 결정하고 취직을 잘했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생각해 보면 청년일 때 코칭이 더 절실하다. 돈도 없고 정보도 부족한 그때, 코칭료를 내 줄 회사도 없는 그 떄 말이다. 얼마전 국내 CM 분야를 개척한 김종훈님이 쓴 책 ‹프리콘›을 읽었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결정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이 책에 따르면, 건설 프로젝트의 기획, 설계, 발주, 시공, 유지관리의 5단계 중에 기획 단계가 핵심이라고 한다. 기획단계는 비용은 전체의 5%에 불과하지만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영향력은 65%나 되기 때문이다. 인생도 하나의 프로젝트라면 기획단계는 청년기다. 인생 전체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도 엄청나다. 친구의 딸, 아들들과 성인으로서 코칭 대화를 하는 게 나는 즐겁다. 가족도 아니고, 직장 관계도 아닌 제3의 관계라고 할까. 내 두 아들도 다시 코치님들께 코칭을 부탁해봐야겠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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