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대인들이 똑똑할까? 왜 유대인들이 노벨상도 많이 타고, 돈도 많이 버는 것일까? 그들이 실제 똑똑할까? 어디선가 유대인이 한국인보다 평균 IQ가 떨어진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난 유대인과 한국인의 차이는 교육방법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조용히 앉아서 선생님 얘기를 듣는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질문을 하면 찍힌다. 유대인은 반대다. 그들은 수업시간에 시끄럽다. 질문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듬는다. “공부하는 인간”이란 책에서 소개하는 유대인의 공부법을 인용한다. “유대인 도서관 예시바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다. 예시바에 들어선 순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조용히 책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곳은 마치 시장처럼 시끄러웠다. 대부분 사람들이 책상 위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다른 사람과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예시바는 질문을 매개로 한 토론과 논쟁의 공부를 중시하는 유대인의 교육문화를 집약해놓은 공간이었다. 더 흥미로운 건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는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점이다. 초면인데 지속적으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토론을 벌였고, 나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토론 주제에 대한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이는 유대인 학교만이 아니었다. 뉴햄프셔에 위치한 미국 최고의 명문고등학교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도 그랬다. 그곳의 수업은 하크니스 테이블(Harkness Table)이라고 불리는 큰 원형 탁자에서 토론식으로 이루어진다. 큰 원형 탁자에서 교사와 12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업을 한다. 앉은 모든 사람이 상대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한다. 모든 사람의 질문과 의견, 아이디어가 동등하게 오간다. 이런 수업방식 덕분에 필립스 아카데미는 평범한 학교에서 세계 최고의 명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역시 비슷하다. 이 학교는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를 지향한다. 1:1로 개인교습을 한다. 튜터링(tutoring) 수업이다. 교수가 1~2명의 학생을 집중적으로 개별 지도하는 수업이다. 질문하고 답을 한다. 혼자 가르치고 받아 적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선생님은 얘기하고 학생은 듣는다. 오래한 우리 교육풍경이다. 이 방법은 저학년 때는 효과적이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효과적이다. 듣는 것보다는 스스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더 효과적인 건 자신이 이해한 걸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 이게 교육이다. 근데 이런 풍경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된다. 회사에 들어가 교육을 받아도 비슷하다. 강사는 얘기하고 수강생은 듣는다.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어도 이들이 아는 교육은 늘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CEO는 일주일에 세 번 조찬강연을 참석한다. 대단한 열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공부를 안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이런 식으로 좋은 얘기를 쫓아다닌다고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변화에 한계가 있다. 듣는 식의 교육은 효과적이지 않다. 평생을 듣는다고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냥 매일 듣는 것보다는 읽는 게 효과적이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요약해보면 효과가 커진다. 훨씬 크다. 해봐야 알 수 있다. 혼자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다른 사람과 얘기 나누는 것이다. 텍스트에 대해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 등을 얘기해보는 것이다.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같은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이른바 독서토론회다. 난 오래 전부터 이런 식으로 기업교육을 진행하는데 효과를 실시간으로 느낀다. 나도 느끼고 듣는 이들도 느낀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그냥 매일 듣는 게 제일 아래다.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아는 게 아니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듣는 것보다는 읽는 게 파워풀하다. 듣는 것보다는 읽는 데 뇌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냥 읽는 것보다는 읽고 이해하고 이를 요약해보는 것이다. 다음은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 차이를 느끼는 것을 통해 아는 게 훨씬 풍성해진다. 마지막 지식의 정점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난 현재의 한국교육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학교교육, 대학교육은 물론 기업교육도 그렇다. 내가 만일 책임자라면 이렇게 바꾸고 싶다. 첫째, 일방적인 교육은 금지한다. 아주 저학년을 제외하고는 쌍방향교육을 하게끔 하겠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워포인트를 없앤다. 특정 아젠다에 대한 사전 과제물을 읽어오게 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요약하도록 한다. 질문도 몇 가지 준비하게 한다. 둘째, 임의로 그날 발제자를 선정한다. 발제자는 내용을 요약하고 논의할 내용을 얘기해야만 한다.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하고 왜 이런 질문을 준비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임승차자를 막기 위해 누가 발제자인지 임의로 그때그때 선정한다. 모두가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이후는 열띤 토론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남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아젠다 선정이 중요하고 거기에 맞는 책을 잘 골라야 한다. 둘째, 독서력이 필요하다. 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발표력도 필요하다. 읽은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팩트요약, 팩트에 대한 자기의견과 감정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강사나 선생의 역할이 완전 변해야 한다. 난 일방적인 강의가 너무 싫다. 그보다는 불꽃이 튀는 지적 교류가 일어나는 강의가 좋다. 언제까지 듣기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얘기만 들을 것인가?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바뀌어야 한다.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 교육현장이다. 학교교육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업은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전제조건이 있다. 준비된 퍼실리테이터가 있어야만 한다. 압도적 지식의 우위를 갖고 남다른 통찰력, 남과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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