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사 가려고 했더니, 상냥하게 종이컵에 담아주며 텀블러를 받지 않았다. 감염 우려 때문이었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정책은 이제 뒷전이다. 위생과 안전이 대두되자 환경 이슈가 단박에 뒤로 밀려나는 걸 보며 매슬로우를 떠올렸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애이브러험 매슬로우는 인간 욕구에 위계가 있다고 했다. 생존의 욕구가 맨 아래에 자리 잡고 그 위에 안전, 사랑과 소속, 존경,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으며,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를 추구한다고 보았다. 생존과 안전이 확보되어야 사랑도 존경도 원한다는 이 이론은 후대에 비판을 받고 수정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강력한 프레임이다. 아, 한때 죄인 취급 받다가 속속 컴백하고 있는 일회용기와 플라스틱들아 안녕. 너희는 매슬로우의 계단 어디쯤 있는 걸까? 나의 대학 수업은 4주째 Zoom이라는 화상시스템으로 진행하고 있다. 기존 온라인 수업이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일방적 방식이라면, zoom은 실시간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 훨씬 효과적이다. 내 경우는 예전에 36주 동안 매주 글로벌 슈퍼비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게 Zoom을 활용한 교육이었다. 미국, 멕시코, 러시아, 인도 등 전세계에서 참여한 코치들과 매주 가상공간에서 만났다. 소회의실로 나누어 조별 실습을 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데 아무 장벽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비대면’이 아니라, ‘디지털 대면’ 혹은 ‘버추얼 대면’이다. 그래서 교통도, 종이도 공간도 덜 쓴다. 디지털 자체가 환경 친화다. 플라스틱 일회용품의 귀환에 상했던 마음이 좀 밝아진다. 멈추지 말고 늘려야 할 세 가지 자본 위기의 시간이 성장의 멈춤이 아니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런던 비즈니스스쿨의 린다 그랜튼 교수는 ‹일의 미래›에서 미래를 대비하려면 갖춰야 할 세 가지 자본을 들었다. 지적 자본, 감성 자본, 사회적 자본이다. 당장 매출과 수익이 줄어드는 건 현재의 재무적 지표인데 반해, 이 세 자본은 미래 성과를 가져다줄 요소들이다. 지금 어렵더라도 지적, 감성적, 사회적 자본을 늘리고 있다면 그 조직은 옳게 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지적 자본을 늘리는 방법은 공부다.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라. 외국어를 익혀라. 내지인은 자동 동시통역기가 나올 테니 외국어 배울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쳤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의 지식은 대다수가 영어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자국 언어에 관한 자존심이 높은 프랑스인들도 34%가 영어를 활용한다. 조직은 내부의 학습 수준과 프로세스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관심 분야를 정해 배우라. 커리어에서 ‘제너럴리스트냐, 스페셜리스트냐’ 하는 논쟁은 거의 끝난 셈이다. 앞으로는 (하나가 아닌) 몇 가지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감성 자본은 어떤가? 감성지능 전문가 다니엘 골만에 의하면, 자기 인식, 타인에 대한 공감, 친절함, 성취동기 등 감성 자본은 노력과 훈련으로 높일 수 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료진을 지원하는 일, 먼저 친구들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일,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좋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험, 자신을 성찰하고 일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도 감성 자본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신뢰다. 유발 하라리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해,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disunity)하는 것이라면서, 국가들끼리 서로 돕지 않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며 각자 길을 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신뢰를 흔드는 행동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고 하고 싶다. 가짜 뉴스, 자기 편의를 앞세운 이기적 행동, 특정 집단 증오와 편가르기 선동 등. 신뢰의 감소는 결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지운다. 다시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설을 생각해본다. 위계설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모든 인간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행동의 드라이버가 된다는 것이다. 배고픔은 먹는 것으로 해결해야지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정의 욕구가 결핍되면 타인의 공적을 깎아내리는 행동이 나온다. 지구촌이 뜻밖의 생존의 불안을 안게 된 지금, 사랑과 소속, 존중과 자아실현이라는 우리가 추구했던 것들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중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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