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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주인이 누굴까? 주인인지 아닌지를 뭐로 판단할 수 있을까?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이 주인이다. 여러분은 어디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가?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이 생각 저 생각을 한다면 뇌가 주인이다. 하루 종일 산을 타고 있다면 다리가 주인이다. 사람마다 주인이 다른 것 같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뇌는 주인이 아닌데 현재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다른 표현으로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다. 거기에 관한 의견 하나를 소개한다. “뇌는 우리 몸의 주인이 아니다. 진화 과정에서 뇌는 한참 나중에 나타난다. 몸의 중심은 입과 성기이다. 인간이 최강의 포식자가 된 것은 언어중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문명이 발달했다. 근데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주객이 전도되었다. 몸을 위한 부속기관 뇌가 주인행세를 한다. 몸에서 유리되어 제멋대로 논다. 그래서 각종 신경질환이 발생한다. 히스테리, 우울증, 정신분열, 공황장애 등등… 종이 되어야 할 뇌가 주인 노릇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정신질환이다. 수행의 목표는 뇌가 분수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뇌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다. 몸에 순종하게끔 하는 것이다.” 김성철 붓다의 과학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지나치게 머리 쓰는 걸 자제시켜야 하고 그게 바로 수행이란 것이다.

번잡煩雜한 사람이 있다. 생각이 복잡하고 따지는 게 많다. 안 되는 것도 숱하고 하라는 것도 엄청 많다. 그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피곤하고 고통스럽다. 잠시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드니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도 생각이 많다는 걸 인지한다. 근데 생각이 많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생각이 많다는 것의 정의는 몸은 움직이지 않고 대신 머리만 사용하는 것이다. 아니 몸이 지나치게 편한 것이다. 먹고 살만하고 뾰족이 하는 일이 없으니 에너지를 쓸데없는 생각에 쓰는 것이다. 근데 이런 것이 가치가 있을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긴커녕 본인의 몸과 마음만을 상하게 할 뿐이다. 물론 주변 사람도 상하게 한다. 먹고 살만하니까 병이 들었다는 것도 난 비슷하게 해석한다. 전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 몸을 많이 썼고 생각할 여유가 적었는데 살림이 펴면서 몸은 편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육체와 정신 사이에 균형이 깨진 걸로 난 해석한다. 근데 생각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이 많아졌을까? 이유 중 하나는 정보의 과잉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쓸데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된 것이다. 몰라도 좋고 알 필요가 전혀 없는 것, 아니 알면 좋지 않은 걸 너무 많이 알게 된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와이 여행가는 걸 내가 알아야 하나? 사돈의 팔촌이 맛집에서 올린 사진을 봐야 할 이유가 있는가? 모르는 사람의 운동으로 다듬어진 몸을 보면서 내 몸을 미워해야 할 일이 있을까? 보수와 진보 중 하나를 꼭 골라야만 하는 것일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욕하는 걸 왜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야말로 영양가 제로의 정보와 지식이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나를 미워하게 되고 영혼이 복잡해진다. 문제는 에너지의 낭비이다.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니 막상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한다. 하는 일 없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해결 방법은 심플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머리를 쓰는 대신 몸 쓰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가혹할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몸이 힘든 순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다음은 스마트폰의 사용자제이다. 끊을 수는 없겠지만 이용을 자제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노예에서 벗어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럼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에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늘을 보며 걷고, 바람을 느끼고, 사진을 찍는 대신 그 순간을 즐기고 느끼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이 아닌 내 몸이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마지막은 명상이다. 차분히 앉아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생각이나 계획, 기억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런 것들 없이는 살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95%나 차지하고 있다. 이것들 때문에 순간을 느끼는 시간이 너무 줄어 든다는 것이 문제다. Sati(알아차림, 깨어있음)를 할 시간이 너무 없어 덧없는 희로애락에 집착하고 삶을 두려워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을 적게 하면 Sati를 많이 할 수 있어 보다 충만하게 살 수 있다.” ‘처음 만나는 명상 레슨’ 의 저자 잭 콘필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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