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이 멈춰 서고 있다. 비즈니스가 돌아가고, 학교에 가고, 교회와 절에 가고,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던 그런 일상이 빠르게 멈춰서고 사라진다. 건물이 폐쇄되고, 개강이 연기되고, 졸업식과 학회가 취소되고, 행사와 교육이 연기된다.
이렇게 되고 나니, 그동안 누리던 일상이 많은 전제 위에서 가능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를테면 전쟁이 아닌 평화, 감염이 없는 위생,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 당국과 제도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믿음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전제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 하나가 무너지면 즉각적으로 전체 시스템의 위기로 번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 같은 초연결사회에서 전염병은 경제 시스템과 정치사회의 위기를 불러오지만, 가장 결정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의 위기
전염병은 단절을 가져오고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비합리적 공포와 히스테리를 퍼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 자원해서 대구로 가 격무를 감당하는 의료진들, 위기 극복 성금을 보내는 국민들, 세입자들의 임대료를 깎아주는 건물주들, 이런 보도를 보면 신뢰와 희망이 되살아난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높아진다. 그분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들을 보며, 존 러스킨의 책에서 읽었던, 잊을 수 없는 한 문장이 떠올랐다. ‘명예의 뿌리는 희생이다’(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2009). 명예는 성공이나 탁월성의 결과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희생했거나 희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얻는 것이 명예다. 나는 크게 공감했고, 깨우침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위기를 극복해온 저력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만 보더라도 두 번의 큰 경제위기와 정치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며 진전해왔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개인과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 요소를 책 <대변동>에서 설명했다. 첫 번째가 위기임을 인정하는 것, 즉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다. 두 번째는 책임의 수용이다. 남 탓, 다른 집단 탓은 도움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식민지 시대를 악독한 식민제국 탓으로 돌리고,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다음 위기를 막지 못한다. 세 번째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규정하는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다. 그 다음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초점을 세우고,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고, 문제 해결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를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그는 정직한 자기 평가를 강조한다. 핀란드는 1939년 소련의 침공 위기를 극복하며 반세기만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자국이 언제든 침탈당할 수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외교와 경제 정책 덕분이었다.

개인 삶의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개인의 삶에도 위기가 닥친다. 사업 실패, 갑작스러운 퇴직, 가족과의 결별, 믿었던 사람의 배신 등등. 삶의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자존심을 내세워 별것 아니라고 하지 말자. 위기임을 인정해야 차분해진다. 모두가 못된 상대방 탓이라고 하지 말자. 우리는 드라마 속의 희생자가 아니다. <대변동>의 조언대로,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책임을 수용하되, 문제 해결에는 울타리를 쳐야 한다. 안 그러면 이 위기로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굴게 된다. 좌절은 금물이다. 남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아보고, 주위의 지원을 구하자. 결국 위기를 잘 극복하면 과거보다 더 강한 나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