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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소비제품 부서에서 일할 때다. 인원은 부족한데 최성수기를 맞아 엄청 일이 많았다. 마케팅 캠페인도 해야 하고 판매처도 관리해야 하고, 홈페이지 문의와 제품 배송 등 밀려드는 고객 반응에도 빠른 답변을 해야 했다. 제작 관리도 우리 몫이었다. 회사에서 메인 부서가 아니라 주목은 별로 못 받으면서 실컷 고생만 했다. 예기치 않게 매출이 급성장해서 달랑 일곱 명의 팀원으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죽하면 본사를 방문했던 고객이 직원 좀 더 뽑으라고 충고를 할 정도였다. 야근은 필수고 주말에도 나와 일했다. 물론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늦은 밤 퇴근하다가 팀과 소주 한 잔 하면서 그날 있었던 온갖 얘기를 할 때면 에너지가 넘쳤다. 황당한 고객 흉도 보고 말 못 알아 듣는 거래처 직원 뒷담화도 하면서 우리끼리 화기애애했다. 벌써 19년 전 겨울의 일이다.

최근 다시 이때를 떠올리게 된 건 한 워크숍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경험한 최고의 팀은 어떤 팀이었습니까?” 왜 그런지 모르지만 징글징글하게 고생했던 그 팀이 떠올랐다. “무엇이 그 팀을 최고라고 느끼게 했습니까?” 이 질문에 나는 ‘서로에 대한 유대감, 열성적인 몰입, 성취감’이라고 썼다. 딱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급여가 아주 높지도 않았고 최고경영자가 매일 동기부여를 해준 것도 아니었다. 물론 성과가 엄청 나오자, 수고했다며 나중에 일본 3박4일 인센티브 트립을 보내주긴 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 때문에 고생을 참고 견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 팀원들을 보면서 힘을 냈던 것 같다. 그 팀에서 보낸 치열했던 4년은 내 직업 경력을 통틀어 참 고생스럽고 동시에 충만된 시기이기도 하다. 팀과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꼈던 몇몇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팀워크에 대한 코칭
팀워크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팀이 일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란 그물망, 즉 관계가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팀이 일하는 상태란 어떤 것일까? 팀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연구자이자 실리콘밸리 최고의 경영컨설턴트라 불리우는 렌시오니는 책 <팀이 빠지기 쉬운 다섯 가지 함정>에서 팀의 함정으로 다섯 가지를 지적했다. 1. 신뢰의 결핍 2. 갈등에 대한 두려움 3. 헌신의 결핍 4. 책임감의 회피 5. 결과에 대한 무관심.

이 얘기를 해석하자면, 효과적인 팀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서로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신뢰를 구축하고, 둘째 관계의 불편함을 회피하려고 작위적인 조화를 유지하기보다 갈등을 드러내고 다뤄야 하며, 셋째 각자 자기 일에 헌신해야 하고, 넷째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다섯 째, 개인의 업적과 평판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팀의 성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팀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고 각자의 책임을 다하고 함께 결과에 책임질 때 팀워크가 작동된다 하겠다.

팀워크에 적합한 사람들
조직에서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팀워크가 중요하다. 인재도 팀 플레이어라야 한다. 렌시오니는 팀 플레이어는 이기심을 버리고 동료의 기여를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겸손해야 하며, 일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감성지능 즉 사회적 영리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브루스는 <익스트림 팀>에서 최고의 팀은 인간관계와 성과에 대한 집착이라는 역설적인 두 가지를 최대로 추구하는 팀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홀푸드, 픽사, 자포스, 에어비앤비, 파타고니아, 넷플릭스, 알리바바 등에서 최강 팀들을 연구했다. 그 결과 혁신 팀이 위대한 이유는 역설적인 가치를 껴안은 데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역설이란 성과를 지향하면서도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것, 책임감을 부여하면서도 자율성을 용인하는 것, 건설적인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권장하는 것,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팀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것 등이다.

내가 치열하게 일했던 그 팀도 항상 우애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속초로 엠티를 갔다가 만취한 후배가 선배한테 하극상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힘들다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자기만 희생당했다는 사람도 없었고, 스타도 없었다. 고생한 결과 성장한 것에 대한 뿌듯함은 우리 모두의 몫이었다. 고생하면서 다져진 동지애 탓일까, 우리는 거의 이십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일년에 두어 번은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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