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 대형 금융그룹의 CEO는 여성 인력의 성장을 무척 중시한다. 여성 인력 개발을 직접 챙겼으며, 그들에게 도전의식을 불어넣었다. CEO가 관심을 기울이자 실행도 빨랐다. 여성 관리자들의 육성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리더십 교육도 제공되었다. 나도 멘토로서 함께 해왔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여성 리더들은 내가 반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센스 있고 실력도 뛰어났다. 열심히 살고, 대인관계가 좋았으며, 성과창출에 책임을 질 줄 아는, 한마디로 경쟁력이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작년 연말에 고위직으로 승진했다. 멘토로서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여성 리더의 역량 개발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
나는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여성 리더들을 많이 만나왔다. 유수 대학의 여교수회, 여성 과학기술인들, 첨단 기술개발분야, 금융권의 여성 리더들. 이들은 남성 지배적인 문화의조직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대부분 개인 경쟁력이 뛰어났다. 그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시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여성을 더 배려해야 한다는 접근은 ‘똑같이 경쟁해서 올라왔다’는 그들의 자부심에 미묘하게 상처를 준다. 리더인데 여성인 거지, 여성 리더라 다르게 분류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살아남는다는 현명한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리더십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제공해야 하는가? 누군가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개발 포인트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파워 센스, 즉 파워에 대한 감각이다. 남성들은 사회화 과정에서부터 계층적 질서나 권력 관계에 익숙하다. 여성들은 수평적 관계를 잘 맺는다. 이 특성은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일례로 톰 피터스는 여성이 계급의식이 적고, 높은 사람에 의해 덜 위협받으며, 자연스러운 임파워먼트 기질이 있어서 신 경제에 적합하다고 칭송했다(Tom Peters, 2001, ASTD 발표자료). 높은 사람에게 바른 말하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반면 이 특성은 권위와 권력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면, 즉 자신의 영향력과 파워를 발휘하여 구성원을 통솔하고 상사의 권력관계 속에서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부하직원이 동의를 표시할 때까지 설명하려 들거나(말이 많아진다), 동료의 작은 반응에 상처를 입고(감정적으로 휘둘린다),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거나(쉽게 양보한다), 모범생 같은 마인드(완벽하게 자신이 있지 않으면 자원하지 않는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모든 여성을 그렇게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향성은 관찰할 수 있었다.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개발 포인트다. 여성들은 역할이 많아 시간과 에너지를 실용적인 데 집중한다. 장기적으로 유익이 될 네트워킹에 나서기 어렵고 이끌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들에겐 자신감과 경력에 대한 비전을 북돋고 사회적 자본을 쌓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의 교육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코칭과 멘토링을
남성 동료/상사들은 여성 동료/부하에 대해 무엇을 원할까? 인터뷰를 해보면 이런 주문이 많았다.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라’ ‘악착 같은 면을 갖추라’ ‘특별 대접을 바라지 말라’ ‘남성 동료, 상사와 더 많이 교류하라’ ‘남성화 되지 말고 여성의 장점을 살려라’ 등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몰입도나 헌신이 남자보다 떨어진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런 주문이 나올까? 열정 있는 여성들도 ‘험지 자원’ 같은 행동은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하게 직장생활 하려는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완벽주의적인 마인드 때문일 수도 있고 주위의 암묵적인 기대 수준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든, 해결책은 여성들이 자각을 하고 자신의 잠재력에 눈뜨게 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다른 모든 인간 개발이 그렇듯이, 롤 모델이 필요하고 피드백이 필요하며, 고민을 나눌 지지 그룹이 필요하다. 남성에게는 자연스럽게 있는 것이, 여성에겐 의식적으로 마련해야 할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리더십 개발은 일회적인 교육이 아니라, 지속적인 그룹 코칭과 그룹 멘토링이 효과가 있다.

2019년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의하면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이 62%이고, 임원의 여성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OECD국가 평균 여성 임원 비율(2018년 기준) 21.8%에 비하면 매우 낮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와 저성장의 한계에 당면한 한국의 기업 조직들은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그 해법 중 하나는 바로 잠재워져 있는 여성 인력의 개발과 활용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