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명함을 교환한다. 명함은 그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데 명함만으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보다는 그가 시간을 어디에 많이 쓰는지, 누구를 만나는지를 봐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가? 나는 요약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 요약이 내 직업이다. 난 요약하는 사람이다. 난 책을 요약하고, 상대가 한 말을 요약하는 게 직업이다. 일단 세 군데에서 책 소개를 한다. 책을 읽고 요약해서 소개한다. 세리시이오에서는 20년째 책을 요약해 이를 8분짜리 동영상으로 소개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는 6년째 글로만 요약을 한다. A4지로 다섯 장쯤 된다. 교보의 북멘토는 매달 그 달에 나온 신간 중 5권을 추천하고 내가 왜 이 책을 왜 추천하는지를 10줄에서 15줄 정도로 소개한다. 

책을 읽고 요약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든다. 일단 책 선정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나도 관심이 있어야 하고 독자들도 관심이 있어야 한다. 재미만 있어도 안 되고 의미도 있고 깊이도 있어야 한다. 10권 읽으면 한 권 정도 소개할 만한 책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책은 서문만 읽어도 느낌이 온다. 그럴 때는 관심 가는 부분을 보고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은 책을 읽는데 앞부터 읽지 않고 관심 가는 분야부터 뽑아 읽는 편이다. 포스트 잇을 붙이기도 하고, 접기도 하고, 여기저기 표시도 하고, 줄도 치고, 떠오른 생각도 메모한다. 거칠게 읽는 편이다. 그래서 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대신 반드시 산다. 다음은 읽는 내용을 필사한다. 그냥 읽은 것은 기억하기 어렵다. 읽은 것 같지만 사실 읽은 것이 아니다. 나중에 보면 기억 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 정도로는 누군가에게 책 내용을 요약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필사를 한다. 책의 주요 내용을 자판을 두들겨 입력한다. 노동집약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책을 다시 한 번 읽게 된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속도가 느리지만 생각이 정리된다. 이 부분은 꼭 집어넣자, 이 파트는 빼도 되겠다, 이게 핵심이구나 등등… 다음은 필사한 것을 바탕으로 소개할 내용을 뽑아내고 필요 없는 건 버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야채를 다듬거나 고기에서 쓸데없는 비계를 제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제 슬슬 글 쓸 때가 됐다. 순서를 정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한다. 순서에 따라 내용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부분도 쉽지는 않다. 대충 얼개가 짜지면 오프닝과 마무리 하는 말을 준비해야 한다. 이 역시 쉽지는 않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내 생각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냥 요약만 하는 건 재미 없다.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이 들어갈 때 글에서 빛이 난다. 

다음은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요약하는 일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난 일방적인 강의는 잘 하지 않는다. 질문하고 답변하는 식으로 강의를 한다. 독서토론회도 많이 진행하는데 책을 읽은 후 거기에 관한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얘기를 풀어간다. 무슨 얘기가 나올 지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는 것과 실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다른 경우도 많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면 엉뚱한 답변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집중해서 들은 후 그들이 한 말을 요약하고 내가 한 요약이 맞는지 그들에게 확인한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는 말씀이 이러이러한 것 맞지요?”라며 묻는다. 이어 내 생각을 얘기하면서 강의를 진행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공감만으론 부족하다. 거기에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 그와 다른 생각,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란 말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고 그들의 머리에서 스파크가 튀게 해야 한다. 이 작업 역시 요약하고 거기에 내 의견을 더하는 일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효과적으로 일하고 싶은가?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요약이다.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 엑기스만 남기는 것이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책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다. 강연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강연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일 수 있으면 된다. 요약은 최고의 공부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