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그럴 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 두고 쓰겠다. 지금 하는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쓰겠다. 공부를 좀 더 하고 쓰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그러면 난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글쓰기 학원이라도 다니시려고요? 언제쯤 그 준비가 끝나나요? 살아생전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요?” 난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기 때문이다. 시작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효과적으로 그 부분을 채울 수 있다. 반대로 차일피일 미루면 1년 후에도 5년 후에도 지금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학습법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은 필요한 공부를 하되 고만고만한 공부보다는 세게 공부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난 대학에 다니면서 박성원씨 교재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근데 늘 미지근했다. 몇 달 학원을 다닌 외에는 바짝 해 본적이 없다. 그러니 발전이 없고 늘 거기서 거기다. 중간쯤에서 중지하고 그걸 반복한다. 그러니 일본어 실력은 “쯔구에노 우에니 가빙가 아리마쓰. 가빙노 나까니 하나가 닥상 아리마쓰” (책상 위에 화병이 있고, 화병 안에는 꽃이 많다)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참 한심한 일이다. 영어에서는 다른 경험이 있다. 고교시절 영어교재는 난이도에 따라 세 종류가 있었다. 가장 초급은 기초영문법이다. 아주 쉬워 중학교 때 마스터했다. 다음은 성문종합영어이다. 제법 수준도 있고 잘 만들어 나를 포함한 대부분 친구들은 이 책으로 공부했다. 마지막은 1200제란 책이다. 어려운 문제를 1200개 뽑아놓은 것인데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문제들이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 차 있다. 폼을 잡겠다는 욕심에 그 책에 도전해 뜨거운 맛을 봤다. 정말 하루에 한 두 페이지도 나가기 어려웠다. 근데 그렇게 몇 주 공부를 한 뒤 다른 영어책을 보니 그렇게 쉬울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때론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당신에게 집중하라”란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난 원래 음악가였다. 그때 멘토였던 아틸리오 포토 교수에게 진정한 공부법을 배웠다. 사제 간으로 처음 만난 날, 그는 틀린 부분을 지적하고 올바른 연주법을 보여 주었고 난 일주일간 그 곡을 다시 연습하겠다고 했는데 그는 내 간청을 묵살하고 다음 주에 연습할 곡을 주었다.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당연히 난 실수투성이였다. 근데 포토 교수는 매주 새롭고 더 어려운 과제만을 주었다. 6주째 되던 날, 난 도저히 이런 식으로는 배울 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페이지를 넘겼는데 이번에는 뒤가 아닌 앞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지시를 따라 첫 번째 과제였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처음엔 연주할 수 없었던 그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 전혀 손댈 수 없어 건너뛰었던 부분까지 부드럽게 넘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때 내가 배운 교훈은 이렇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가 앞으로 나가야 할 때이다. 앞으로 나가다 보면 처음 건 별거 아닐 수 있다. 자꾸 거기 머물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양들은 겨울이 오기 전 양털을 깎는다.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털을 깎지 않은 양은 털을 믿고 자만하다 자칫 추운 겨울에 얼어 죽기도 한다. 하지만 털을 깎은 양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부지런이 움직인다. 준비가 될 때를 기다리기 보다는 일단 어려워 보여도 도전하라. 뭐든 완벽한 날은 오지 않는다. 부족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일도 그렇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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