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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강점에 불 밝히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저명한 마에스트로와 여류 성악가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모두들 천생연분이라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성악가는 서서히 시들어갔다. 남편이 늘 “여길 고쳐, 저길 고쳐” 지적하며 훈련을 시켰지만 전혀 좋아지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성악가는 노래를 포기하고 가사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다 지휘자인 남편과 사별하고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어느 사업가와 재혼을 했다. 신혼 초에 아침상을 차리며 부르는 아내의 노랫소리를 듣고 남편이 격하게 칭찬을 했다. 
“당신 노래 정말 끝내주는데, 노래공부 다시 시작해보지 그래?” 
“관둔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10년?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바로 시작해” 
이렇게 해서 그녀는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열심히 연습해 카네기홀에서 발표회를 열었는데, 관객 전원에게 기립 박수를 받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디어는 앞다투어 그녀의 화려한 재기를 대서특필했다. 그 후 그녀는 매일을 꿈꾸듯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 전 남편은 음악의 대가였다. 그래서 아내의 약점만 보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했다. 재혼한 남편은 아내의 강점에 알아내고 인정하고 격려하고 지원했다. 

칭찬,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다
이번엔 필자의 어릴 적 경험담이다. 중2 때 경제적 이유로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하고 결석을 자주 해서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칠판에 문제를 적어두고 풀 수 있는 학생이 앞으로 나와 풀게 하셨다. 모두 어려워했던 인수분해 문제였는데 내겐 쉽게 느껴졌다.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가 단숨에 풀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무철인 수학박사인 모양이야. 어떻게 이렇게 쉽게 풀 수가 있지! 잘했어, 모두 박수.”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선생님의 칭찬에 전율을 느꼈다. 이후로 선생님은 수학시간마다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어 주셨다. 선생님의 따뜻한 스킨십과 관심은 어린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관심, 성취감이 무엇인지 알게 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기 첫날 키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 받았다. 2학년 성적 꼴찌군에 속한 필자가 31번이었고, 내 짝꿍 32번은 전교 2등을 한 수재였다. 행운의 여신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청도가 고향인 그 친구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어느 날 그의 자취방에 초대했다. 귀한 쌀밥을 지어 맛있게 먹은 뒤 함께 공부를 했다. 교실 밖에서 해본 첫 공부였다.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그의 손에 이끌려 무박 2일의 독서실 공부도 경험했다. 얼마 후 이변이 일어났다. 내가 1학기 중간고사에서 2등을 한 것이다. 그 친구 다음으로 성적이 좋았다. 이럴 수가! 나도 놀라고 그도 놀라고 담임 선생님도 놀랐다. 친구의 진심 어린 관심이 나를 우등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처음 맛보는 성취감이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인칭관은 인정, 칭찬, 관심의 머리글자를 딴 조어다. 코칭에서 고객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은 좋은 관계의 마중물이다. 적극적인 인정과 칭찬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대화의 활력소다. 그래서 경청, 질문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들이다. 상호 의존적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인정과 칭찬, 그리고 관심에 목말라 있다. 미물인 동물들도 그렇지 않은가? 인칭관은 넘쳐흘러도 지나침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조직에서는 리더가 인칭관을 몸에 익히고 마음껏 베풀면 어떨까? 

* 칼럼에 대한 회신은 om5172444@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