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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취향이 분명하다. 커피 주문이나 러닝화 고를 때만이 아니다. 좋아하고 의미를 두는 것에는 투자도 많이 한다. ‘배게 유목민’이란 말 들어보셨는가? 자기에게 꼭 맞는 베개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쿠션 유목민도 있다. 하하. 직접 쓴 손 글씨가 다시 유행하고, 뜨개질도 인기다. 나만의 작품을 담백하게 만드는 재미도 있지만, 뜨고 풀고를 반복하면서 힐링이 된다. 국립박물관의 반가사유상 앞에 서 있는 그 체험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선다. 취향은 그냥 선호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언어다.


‘우리’에서 ‘나’로, 사회적 기준에서 개인의 감각으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취향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왜 이게 트렌드의 키워드가 되었을까? 그 아래 있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고 싶은 것은 ‘나’이고, 그냥 내가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더 잘 알고 싶다는 욕구로 폭발된다.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휩쓴 MBTI 열풍은 그 부산물이다.(2026 트렌드노트, 박현영 외)


성공보다 성장

소셜 미디어상의 언급 단어를 보면, 2023년을 계기로 ‘성공’이란 단어를 누르고 ‘성장’이란 단어가 더 많아졌다. 성공은 부자 되기나 대기업 입사 같은 꿈을 이루는 건데, 희생이 따르는 큰 도전이다.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은? 거기엔 실패가 없다. 러닝이나 마라톤, 독서, 영어를 통한 성장에는 마이너스가 없다. 요즘 사람들은 ‘100억 부자 되기’ 같은 콘텐츠가 올라오면 차단해 버리고, 대신 ‘매일 영어 하기, 러닝 훈련 10주’ 같은 성장형 콘텐츠를 선호한다. 또 루틴이 더 중요해졌지만, 과거 인기였던 미라클 모닝 같은 극기 훈련은 열기가 식고 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촘촘하게 하루를 관리하는 방식이 지속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번아웃을 일으키는 불가능한 도전 대신 매일 할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을 통해 성장한다는 성장감이 환영받는다.


취향과 정체성이 나를 설명해 준다

예전에는 직장이나 직업, 전공이 나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무엇에는 돈과 시간을 쓰고, 무엇에는 전혀 쓰지 않는지가 그 사람을 훨씬 잘 보여준다.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 ‘사는 게 다들 그렇지 뭐’라는 말을 들으면 살짝 안쓰런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쩌면 우리 세대가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를 허락받지 못했다는 고백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무취향의 삶은 산업사회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책 《일의 감각》의 작가 조수용은 이렇게 말한다. 감각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오래 들여다보고, 반복해서 선택한 결과라고. 자신이 진짜 느낀 감각을 되짚어 보면서, ‘아 그게 왜 좋았지? 내가 좋아한 게 어떤 느낌이었지?’를 묻고 그런 감각을 표현해 보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선택할지, 무엇을 거절할지,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어디서 물러날지 기준이 생기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지?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숲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혼자만의 시간, 뭔가 통하는 느낌을 받는 작가들의 문장을 마주하는 것, 오랜 절친들과의 수다와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아는 것… 쓰다 보니 올드하다. 하하. 올해는 나도 뭔가 덕질에 나서고 싶은 신박한 사랑의 대상을 발견하고 싶다.


새해, 이런 질문을 건네보고 싶다

요즘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건 나다"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 당신이 사랑하는 시간과 공간은 어떤 것인가요?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