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임원 시절 내 비서의 역할 중 하나는 신문 스크랩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임원을 위해 비서가 여러 신문에서 도움이 될만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매일 아침 책상 위에 올려놨는데 솔직히 난 거의 보지 않았다. 그 정보가 내게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일 산처럼 쌓이는 신문에 결재서류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스크랩까지 보겠는가? 그러다 비서가 바뀌었는데 그는 달랐다. 일단 주요 기사에는 형광펜으로 표시를 했다. 나름 꼭 읽어달라는 주문이다. 단순히 스크랩만 하는 게 아니라 스크랩 아래 뭐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어느 자동차 회사의 공장폐쇄 기사에는 빨간 글씨로 “생산성 저하가 이유라는데 차제에 당사 생산성 검토를 해보심이 어떨지?” 유가상승 우려의 기사에는 “연비가 탁월한 차 개발을 염두에 두시는 건 어떠신지?” 이런 식이다. 그냥 기사만 스크랩하는 걸 넘어 거기에 자기 의견, 내가 생각했으면 좋을 것 등을 코멘트 하니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가공해 보내준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경제 관련, 환경 관련, 종교 관련 등등… 고마운 일이다. 자기 시간을 들여 이런 일을 하는 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근데 미안하지만 거의 보지 않는다. 요즘같이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내가 그걸 볼 이유는 없다. 그 정도 정보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딴에는 정보를 필터링하고 요약해 보내주는 것이지만 왜 내가 그걸 보지 않을까?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이런 일을 한다면 난 다르게 할 것이다. 정보의 발췌와 스크랩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 가치는 정보와 정보를 연결할 때 나온다. 정보와 정보 사이에 존재한다. 빈 공간에 내 의견을 얘기하고 내 생각을 더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의 해석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몇 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생긴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환경문제가 문제라는 게 새로운 일인가? 종교단체끼리 갈등하고 싸우고 비리가 터지는 걸 내가 알아서 뭐 하는가? 내가 원하는 건 정보와 정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정보를 재해석해 자기 의견을 더하는 것이다. 남과 다른 의견,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능력, 똑같은 걸 다르게 보는 시각 이런 것이 필요하다. 요약은 단순히 줄이는 게 아니다. 그걸 넘어서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요약은 ‘핵심 플러스 거기에 대한 자기 의견’이다. 필터링하고 발췌한 후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있고 빛이 난다. 그걸 바탕으로 뭔가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요청해야 한다. 알고나 있으라는 걸로는 뭔가 허전하다. 책의 요약도 그렇다. 실컷 요약했는데 그걸로 끝나면 허무하다. 난 이 책을 보고 이걸 결심했다든지, 이런 반성을 했다든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잘못 생각을 했다든지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든지. 이게 정말 중요하다. 한 장짜리 제안서도 그렇다. 한 장으로 짧게 줄인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요약에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 나만의 해석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요청이다. 이런 걸 하고, 이런 건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프로젝트를 위한 제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약은 요약을 넘어서야 빛을 발할 수 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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